지라 티켓 확인하는 순간 내 하루가 결정된다
- 02 Dec, 2025
지라 티켓 확인하는 순간 내 하루가 결정된다
9시 32분. 사무실에 도착했다. 가방을 내려놓고 물을 마시고 모니터를 켰다. 키보드는 아직 안 만졌다. 지라 대시보드를 연다. 그 순간이다. 내 하루의 온도가 결정된다.
초록색 ‘To Do’, 파란색 ‘In Progress’, 빨간색 ‘Blocked’. 티켓 수를 세지 않아도 느낀다. 오늘 좋은 하루가 될 건지, 아니면 밤 10시까지 야근할 건지. 지라가 말해준다.
아침 9시 32분, 나의 운명의 대시보드
지라를 보는 것은 의식이다. 마치 점쟁이가 타로를 펼치는 것처럼.
먼저 빨간색부터 센다. ‘Blocked’ 상태의 티켓. 개발자가 막혀 있다는 뜻이다. 내가 뭔가 줘야 한다는 뜻이다. 스펙을 다시 정의하거나, 디자인을 재확인하거나, 대표님한테 의사결정을 받아야 한다. 어쨌든 내 책임이다.
어제 4개였는데 오늘 6개? 그럼 밤이 길어진다. 직관이 아니라 확률이다.
그 다음 보는 게 우선순위 태그다. P0, P1, P2. P0는 “비즈니스가 멈춘다”라는 뜻이다. 요청에 응할 기한이 있다는 뜻이다. 오늘은 P0가 3개다. 지난주에는 1개였다. 그럼 오늘은 다른 계획을 포기해야 한다는 뜻이다.
내 일정표를 버릴 준비를 한다. 10시 디자이너 미팅은 아마 30분 단축될 것 같다. 3시 이해관계자 미팅은… 최악의 경우 취소다.
버그 vs 피처 vs 긴급, 우선순위의 재빠른 판단법
지라 티켓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우선순위는 라벨만으로는 안 보인다. 그걸 읽어내는 게 기획자의 일이다.
버그 확인하는 법
티켓 제목에 ‘[BUG]‘가 붙어 있다. 디스크립션을 읽는다. 스크린샷이 붙어 있는가? 재현 방법이 명확한가?
“로그인 실패합니다” vs “로그인 화면에서 이메일+비밀번호 입력 후 엔터 누르면 다음 화면으로 안 넘어가고 같은 화면에 머물러 있음. 스크린샷: 첨부. 브라우저: Chrome 최신 버전. 디바이스: MacBook”
두 번째가 진짜 버그다. 첫 번째는 다시 쓰라고 comment를 달았다.
버그의 심각도(Severity)를 본다. ‘Critical’이면 사용자가 앱을 못 쓴다는 뜻이다. ‘Major’는 기능이 작동하는데 불편하다는 뜻이다. ‘Minor’는 타이포 같은 거다.
Critical 버그는 커피를 마실 시간도 없다.
피처 요청 읽기
‘[FEATURE]’ 라벨이 붙어 있다. 이건 개발팀의 티켓이 아니다. 보통 영업팀이나 마케팅팀에서 올린 거다. 또는 대표님이다.
스펙이 있나? 없으면 내가 1시간을 또 써야 한다는 뜻이다.
“새로운 필터 기능 추가 필요”
이 정도면 스펙이 아니라 한 줄 소원이다. 내가 물어봐야 한다.
- 어떤 필터를 원하나?
- 왜 필요한가?
- 언제까지인가?
- 사용자 수는 몇 명이 영향을 받나?
- 이걸 하면 기존 기능이 밀려도 괜찮나?
마지막 질문이 핵심이다. 모든 피처 요청의 뒤에는 일정 압박이 숨어 있다.
긴급 요청의 냄새 맡기
긴급이라고 명시된 건 사실 드물다. 코맨트 섹션이 뜨거운 게 신호다.
“@기획자K, 언제까지 돼요?” (어제 오후 5시) “오늘 안에 진행 가능할까요?” (오늘 아침 8시) “대표님이 확인해야 한다고 했어요” (오늘 아침 9시)
이런 메시지가 많으면 그건 긴급이다. 사실 중요도와 무관하게.
지라 보고 3초 의사결정법
경험상 지라 대시보드를 3초 보면 오늘의 운명이 결정된다.
1초: Blocked 티켓 세기
5개 이상이면? 아침 회의에서 먼저 “뭐가 막혔어요?”를 물어야 한다는 뜻이다.
2초: P0 티켓 있나?
있으면 일정 재편성을 시작한다. 없으면 계획대로 간다.
3초: 어제와 비교하기
어제 ‘To Do’가 10개였는데 오늘 14개? 그럼 티켓 추가가 4개 들어왔다는 뜻이다. 스프린트 계획을 다시 봐야 한다.
이 3초가 내 하루를 결정한다.
내가 매일 하는 지라 의식
출근 후 가장 먼저 지라를 본다. 슬랙 메시지는 이후다. 왜냐하면 지라는 사실(Fact)이고, 슬랙은 노이즈(Noise)일 수 있기 때문이다.
지라 필터를 내 역할별로 저장해두었다.
필터 1: “내가 Assignee이고 In Progress인 티켓” 이건 내가 끝내야 할 일이다. 보통 3~5개다.
필터 2: “나한테 할당되지 않았는데 내가 Reporter인 티켓” 이건 내가 만든 일인데 남이 하는 거다. 진행률을 체크해야 한다.
필터 3: “P0 or P1이고 To Do인 티켓” 이건 아직 시작 안 된 중요한 일이다. 왜 시작을 안 했는지가 중요다.
필터 4: “Blocked이고 3일 이상” 이건 내 책임이다. 3일 넘게 막혀 있으면 내가 뭔가 안 한 거다.
이 4개 필터만 봐도 오늘 뭘 할지 알 수 있다.
지라 티켓을 쓸 때 나의 원칙
남도 이걸 본다. 개발자도, 디자이너도, 대표님도 본다. 그래서 글을 쓴다.
제목은 액션을 명확하게
“로그인 개선” (X) “로그인 실패 시 에러 메시지 개선” (O)
디스크립션은 문맥을 담는다
왜 하는가? 사용자가 로그인 실패 시 무슨 문제인가를 모르고 있다. 비즈니스 결과는 로그인 실패율이 20%다.
뭘 하는가? 로그인 실패 화면에 “비밀번호가 맞지 않습니다” 대신 구체적인 가이드를 보여준다.
어떻게 성공인가? 로그인 실패 후 retry 비율이 50%에서 70%로 올라가거나, 로그인 실패 문의가 30% 줄어든다.
수용 기준은 테스트 가능해야 한다
“좋아 보이면 OK” (X) “로그인 실패 시 에러 메시지가 3초 이상 표시되고, 클릭할 수 있는 ‘다시 시도’ 버튼이 있어야 함” (O)
지라를 못 읽으면 기획자가 아니다
말이 좀 강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지라는 팀의 현재 상태를 보는 창이다. 우리가 얼마나 바쁜지, 뭐가 막혔는지, 뭐가 우선인지 다 알 수 있다.
지라를 못 읽는 기획자는 감으로 일한다. “아, 중요할 것 같은데”, “개발자가 바쁠 것 같은데” 이런 식으로. 그럼 언제나 핸드폰을 들어서 “근데 이거 언제까지 돼요?” 메시지를 받는다.
내가 아침에 지라를 본 이유는 이거다. 먼저 우리 팀의 상태를 알고, 내가 뭘 할지 정하기 위해서.
오늘의 지라는 어땠나
아침 9시 32분. 지라를 봤다.
Blocked: 2개 P0: 1개 P1: 3개 To Do: 12개
어제보다 Blocked가 줄었다. 어제 한 일들이 진행 중이라는 뜻이다. P0는 어제와 같다. 새로 들어온 P1이 2개다.
나쁘지 않다. 오늘 야근은 안 할 것 같다.
8시에 퇴근해도 될 것 같다.
일단 Blocked 2개부터 풀어보자. 하나는 디자인 확인이 필요하고, 하나는 대표님 의사결정이 필요하다.
디자이너한테 먼저 가서 “이 화면 어디까지 왔어요?”라고 묻겠다.
그리고 점심 후에 대표님 일정을 확인해서 30분짜리 빠른 회의를 잡겠다.
P0 1개는 이미 진행 중이니까 개발자 상황만 확인하면 된다.
새로 들어온 P1 2개는 내일 진행 가능할지 스프린트 일정과 비교해서 판단하겠다.
이렇게 생각하는 데 5분이 걸렸다.
지라 한 번 보고 5분이면 내 하루 구조가 다 짜인다.
다른 기획자들한테 물어본 적 있다. 너희는 어떻게 하냐고.
“아, 나는 그냥 슬랙 메시지 기준으로 우선순위를 정해” “대표님이 중요하다고 한 거 먼저 해” “개발자가 재촉한 것부터”
그렇게 하면 바쁘다. 충분히 바쁘다. 그리고 항상 뭔가 빠뜨린다.
지라를 기준으로 하니까 뭐가 빠진 게 없다.
물론 지라 자체가 완벽하지는 않다. 누군가 티켓을 안 만들 수도 있고, 우선순위를 잘못 매길 수도 있다.
하지만 지라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그냥 현실이다.
지라가 나의 일정표다
캘린더는 회의 시간만 적혀 있다. 진짜 일은 지라에 있다.
그래서 나는 매일 아침 9시 32분에 지라를 본다.
그 3초가 내 하루를 결정한다.
오늘 밤 10시까지 야근할지, 8시에 퇴근할지.
오늘 커피를 1잔 마실지, 5잔 마실지.
오늘 남자친구한테 “늦을 것 같아”라고 문자할지, 아니면 조용히 집에 갈지.
모든 게 지라 대시보드에 담겨 있다.
신기한 건, 경험이 쌓일수록 지라를 보는 시간이 줄어든다는 거다. 요즘은 진짜 3초면 충분하다. 패턴을 알기 때문이다.
스프린트 계획할 때 Blocked가 많으면? 팀의 의존성이 많다는 뜻이다. 다음 스프린트에서는 독립적인 일들을 선택해야 한다.
P0이 자주 들어오면? 비즈니스 요구가 계획 없이 들어온다는 뜻이다. 제품 로드맵을 다시 짜야 한다.
To Do가 자꾸 증가하면? 일 추가 속도가 일 처리 속도보다 빠르다는 뜻이다. 뭔가 줄여야 한다.
지라는 팀의 진짜 상태를 말해준다. 회의에서는 안 나오는 진실을 알려준다.
기획자로 일한 6년, 지라의 진화
처음에는 지라를 싫어했다. 왜냐하면 일이 가시화되니까. 지라 없을 때는 슬랙으로 주고받고, 한두 개는 깜빡할 수 있었다.
지라를 쓰기 시작하니까 내가 얼마나 바쁜지, 계획이 얼마나 밀리는지 다 보였다. 불편했다.
그런데 지금은 반대다. 지라가 없으면 못 산다.
지라 없으면 내가 뭐를 해야 하는지, 팀이 뭐 하는지 모른다.
지라가 있으니까 데이터 기반으로 말할 수 있다.
“지난주에 P0이 3개, 이번주에 5개 들어왔어요. 계획을 다시 짜면 좋겠어요.”
감으로 말하는 것과 숫자로 말하는 것은 다르다.
내일 아침 9시 32분
지라를 또 본다.
오늘 처리한 티켓들이 ‘Done’으로 이동했을 거다. 오늘 새로 들어온 일들이 ‘To Do’에 있을 거다.
내 하루가 또 결정된다.



지라가 거짓말을 하지 않는 유일한 이유는 그게 팀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