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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님이 갑자기 던지는 피처 요청에 대처하는 법

대표님이 갑자기 던지는 피처 요청에 대처하는 법

대표님이 갑자기 던지는 피처 요청에 대처하는 법 목요일 오후 3시, 슬랙 폭탄 "K님, 30분 뒤에 대표님이랑 회의 잡혔어요." 마케팅팀장 메시지다. 갑자기? "무슨 안건이에요?" "글쎄요, 대표님이 갑자기 보자고." 이런 메시지 받으면 심장이 쿵 내려앉는다. 경험상 좋은 소식은 없다. 서둘러 맥북 챙기고 회의실로 갔다. 대표님은 이미 와 있었다. 노트북 켜놓고 뭔가 보고 계셨다. "앉아요. K님, 이거 봤어요?" 경쟁사 앱 화면이었다. 새로 업데이트된 피처. 소셜 공유 기능. "네, 어제 업데이트됐더라고요." "우리도 이거 해야 할 것 같은데. 다음 스프린트에 넣을 수 있어요?"이미 시작된 스프린트 머릿속이 하얘졌다. 다음 스프린트? 지금 현재 스프린트도 빡빡한데. "대표님, 지금 진행 중인 게 결제 시스템 개편이고, 다음 스프린트는 알림 개선으로 확정됐는데..." "그게 우선순위가 높나요? 경쟁사는 이미 했는데." 이 순간 기획자는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 첫 번째, "네, 알겠습니다" 하고 개발팀한테 가서 죄송하다고 하기. 두 번째, 지금 논리적으로 설득하기. 나는 두 번째를 택했다. 항상은 아니지만, 오늘은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대표님, 10분만 시간 주시면 현재 상황 공유드릴게요." 맥북을 열었다. 지라 보드를 띄웠다. 숫자로 말하기 "지금 진행 중인 스프린트 번다운 차트입니다." 그래프를 보여드렸다. 예정보다 속도가 느렸다. "결제 시스템은 이번 분기 핵심 목표였고, 지금 70% 진행됐어요. 여기에 새 피처 넣으면 일정이 최소 2주 밀립니다." 대표님이 그래프를 보셨다. "그럼 알림 개선을 미루고?" "가능은 한데, 알림 개선은 CS 문의 30% 감소 목표예요. 지금 하루 100건 넘게 들어와요." 숫자를 말했다. 100건. 구체적으로. "소셜 공유는 어느 정도 임팩트 예상하세요?" 대표님 질문이었다. 예상했던 질문. "경쟁사 사례 찾아봤는데, MAU의 5% 정도가 사용하더라고요. 우리 기준으로 월 1500명 정도. 알림 개선은 전체 유저 3만 명에게 영향 줍니다." 1500명 vs 3만 명. 숫자는 강력하다.대안 제시하기 "하지만 소셜 공유가 중요한 건 맞아요." 아니라고만 하면 안 된다. 대표님 의견을 무시하는 게 아니라, 더 나은 방법을 찾는 거다. "MVP로 먼저 가면 어떨까요? 카카오톡 공유만. 개발 2일이면 됩니다." 개발팀장이랑 미리 얘기해뒀다. 이런 상황 올 줄 알았으니까. "전체 소셜 공유는 다다음 스프린트에 제대로 기획해서 넣고요." 대표님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나을 것 같네요. 카카오톡만 우선." 일단 고비는 넘겼다. "그런데 K님, 이런 요청 자주 들어오면 어떻게 해요?" 솔직하게 말했다. "스트레스받죠. 근데 이해는 돼요. 시장이 빠르게 움직이니까." 대표님이 웃으셨다. "미안해요. 근데 우리가 이렇게라도 안 하면 뒤처지잖아요." "알아요. 그래서 제가 우선순위 판단 기준을 만들고 있어요." 우선순위 프레임워크 회의 끝나고 자리로 돌아왔다. 노션을 켰다. 며칠 전부터 만들고 있던 문서. "피처 우선순위 판단 기준" 4가지 축이었다.비즈니스 임팩트 (매출/전환율) 사용자 수 (몇 명이 쓸 것인가) 개발 공수 (얼마나 걸리나) 전략적 중요도 (장기 로드맵)각 항목에 1~5점. 총 20점 만점. 소셜 공유를 넣어봤다.비즈니스 임팩트: 2점 (직접 매출 연결 약함) 사용자 수: 2점 (5% 정도 사용) 개발 공수: 3점 (2주 소요, 역순) 전략적 중요도: 3점 (있으면 좋지만 필수는 아님)총 10점. 20점 만점에 10점이면 중간. 알림 개선은?비즈니스 임팩트: 4점 (CS 비용 감소) 사용자 수: 5점 (전체 유저) 개발 공수: 3점 (2주 소요) 전략적 중요도: 4점 (리텐션 개선)총 16점. 훨씬 높다. 이 프레임워크를 대표님한테 공유했다. 슬랙으로. "다음부터 새 요청 들어오면 이 기준으로 평가해보면 어떨까요?" 답장이 왔다. "좋네요. 다음 주 전사 회의 때 공유해주세요."다음 날 아침, 개발팀과 "어제 대표님이랑 회의했어." 개발팀장이 먼저 물었다. "또 뭐 추가하래?" "응. 소셜 공유." 한숨 소리가 들렸다. "근데 일단 카카오톡만 하기로 했어. 2일이면 되지?" "2일? 그 정도면 괜찮은데." "다음 스프린트에 제대로 넣을게. 지금은 MVP." 개발팀장이 고마워했다. "네가 막아줘서 다행이야. 안 그랬으면 또 일정 터졌을 거야." 막는 게 아니다. 조정하는 거다. "나도 대표님 입장 이해해. 경쟁사 보면 불안하잖아." "그래도 현실을 알아야지. 2주짜리를 3일 만에 하라는 건..." "맞아. 그래서 내가 숫자로 보여드렸어. 임팩트랑 공수." 기획자의 역할이 여기 있다. 비즈니스와 개발 사이. 둘 다 이해하고, 둘 다 설득해야 한다. 2주 후, 회고 스프린트 회고 시간이었다. "이번 스프린트는 어땠어요?" 개발자 한 명이 말했다. "갑작스러운 변경이 적어서 좋았어요." 디자이너도. "카카오톡 공유 디자인도 빠르게 나왔고." 대표님도 참석하셨다. "다음에도 이렇게 우선순위 기준 가지고 판단하죠. K님이 만든 프레임워크 좋더라고요." 뿌듯했다.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다. 다음 주에도, 다다음 주에도 갑작스러운 요청은 올 거다. 그때마다 이 과정을 반복해야 한다. 숫자로 말하기. 대안 제시하기. 팀 설득하기. 기획자의 생존 전략 정리하면 이렇다. 1. 항상 백업 플랜을 가져라 갑작스러운 요청? 이미 예상했다. MVP 버전 생각해놨다. 2. 숫자로 무장하라 "중요해요"보다 "3만 명에게 영향 줍니다"가 강하다. 3. 거절하지 말고 조정하라 "안 됩니다"가 아니라 "이렇게 하면 됩니다". 4. 프레임워크를 만들어라 주관적 판단을 객관적 기준으로. 그래야 설득력 있다. 5. 개발팀을 먼저 챙겨라 그들이 지치면 아무것도 안 된다. 그들의 편이 돼라. 지난주 금요일이었다. 퇴근하면서 개발팀장이 말했다. "요즘 K님 덕분에 일하기 편해졌어." "무슨 소리야." "예전엔 대표님 요청 그냥 내려왔잖아. 지금은 네가 필터링해주니까." 필터링. 맞다. 기획자는 필터다. 모든 요청을 그대로 통과시키는 게 아니라, 중요한 것만 골라내는. 그게 우리 역할이다. 집에 가는 지하철에서 생각했다. 다음에 또 갑작스러운 요청 오면? 숫자 찾고, 대안 만들고, 설득할 거다. 매번 그렇듯이. 그게 기획자니까.갑작스러운 요청은 막을 수 없다. 조정할 수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