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정동 원룸에서 일하는 이 느낌

합정동 원룸에서 일하는 이 느낌

합정동 원룸에서 일하는 이 느낌

퇴근하고 집에 와도

7시 40분에 문 열었다. 현관 불 켜니까 70만원짜리 원룸이 보인다.

책상, 침대, 옷장. 끝이다.

신발 벗고 노트북 가방 내려놓는다. 회사 맥북 프로 하나, 개인 맥북 에어 하나. 둘 다 오늘 켰다.

씻고 나와서 배달 음식 시켰다. 떡볶이 세트. 20분 걸린단다.

그 사이에 노트북 켠다. 개인 거.

토스 업데이트됐다는 알림 와 있다. 바로 깐다.

온보딩 플로우가 바뀌었다. 스크린샷 찍는다. 노션에 붙인다.

“토스 온보딩 업데이트 - 2025.01.15” 페이지 만들었다. 변경점 쓴다. 3단계에서 2단계로 줄였네. 권한 요청 타이밍도 바뀌었다.

떡볶이 왔다. 먹으면서 계속 본다.

사이드 프로젝트라는 이름의

먹고 나서 설거지했다. 9시 10분이다.

회사 일 끝났으니 이제 내 일 할 시간.

사이드 프로젝트 피그마 파일 열었다. “독서 기록 앱” 기획 중이다. 벌써 3개월째.

지난주에 로그인 플로우 그렸다. 오늘은 홈 화면.

어떤 정보를 먼저 보여줘야 할까. 읽고 있는 책? 목표 달성률? 친구들 활동?

30분 그렸다. 마음에 안 든다. 지웠다. 다시 그린다.

10시 넘었다. 아직도 홈 화면 하나 못 그렸다.

회사에서는 하루에 화면 10개씩 그린다. 여기서는 하나도 못 그린다.

왜 그럴까. 생각해봤다.

회사 일은 deadline이 있다. 개발자가 기다린다. 디자이너가 기다린다. 대표님이 기다린다.

사이드 프로젝트는 아무도 안 기다린다. 나만 기다린다. 그래서 더 어렵다.

완벽하게 하고 싶어진다. 회사 일은 일단 MVP로 가는데, 내 프로젝트는 처음부터 완벽해야 할 것 같다.

말이 안 되는 건 안다. 그래도 그렇다.

일이 취미가 되는 순간

11시쯤 됐다. 피그마 닫았다.

유튜브 켰다. PM 관련 영상 찾아본다.

“Product Manager가 알아야 할 데이터 분석” 영상 나온다. 36분짜리. 본다.

SQL 쿼리 나온다. 잘 모른다. 그래도 본다. 메모한다.

“SELECT user_id, COUNT(*) FROM events WHERE…” 이런 거. 언젠가 쓸 수도 있다.

자정 넘었다. 영상 끝났다.

침대에 누웠다. 폰 든다. 브런치 열었다. 다른 PM들 글 읽는다.

“주니어 기획자가 저지르기 쉬운 실수 5가지” 글이 떴다. 읽는다. 나도 다 해봤다.

1시 반이다. 자야 한다. 내일 9시 반까지 회사 가야 한다.

폰 내려놓았다. 다시 든다.

링크드인 열었다. 피드 확인한다. 누가 이직했다. 누가 승진했다. 누가 사이드 프로젝트 런칭했다.

다들 열심히 산다. 나만 이러는 게 아니구나.

위로가 된다. 동시에 불안해진다.

70만원짜리 방에서

이 방에 산 지 2년 됐다.

처음 왔을 때는 회사 일만 했다. 퇴근하면 넷플릭스 보고 잤다.

지금은 다르다. 퇴근하면 더 일한다. 회사 일 말고 내 공부. 내 프로젝트. 내 성장.

언제부터였을까.

작년 여름쯤이었던 것 같다. 회사에서 프로젝트 하나 말아먹었다. 내 기획이 문제였다.

유저 니즈 파악을 잘못했다. 데이터를 안 봤다. 가정만 했다.

3개월 개발했는데 릴리즈하고 한 달 만에 없앴다. 아무도 안 썼다.

그때 느꼈다. 내가 모르는 게 너무 많다.

그 뒤로 집에서 공부하기 시작했다. 경쟁사 앱 분석. PM 책 읽기. SQL 독학. 사이드 프로젝트.

처음엔 힘들었다. 지금은 습관이다.

일과 삶의 경계

남자친구가 물어본 적 있다.

“너 언제 쉬어?”

대답 못 했다.

쉬는 게 뭘까. 넷플릭스 보는 거? 그것도 경쟁사 오리지널 콘텐츠 UX 분석하면서 본다.

친구 만나서 밥 먹는 거? 그것도 식당 앱 주문 플로우 체크한다.

여행 가는 거? 그것도 여행 앱 북마크 기능 스크린샷 찍는다.

모든 게 일이 된다. 아니면 일감이 된다.

병일까? 아닐 것 같다. 좋아서 하는 거니까.

그런데 가끔 피곤하다. 머리가 아니라 마음이.

합정동 밤 2시

결국 2시가 됐다.

내일 회의 있다. 9시 반 데일리 스크럼. 10시 디자이너 싱크. 11시 개발 이슈 정리. 2시 이해관계자 미팅.

준비해야 한다. 자야 한다.

불 껐다. 침대에 누웠다.

천장 본다. 어둡다.

이게 맞나. 이렇게 사는 게.

모르겠다. 그냥 내일도 이렇게 살 것 같다.

책상에 맥북 두 개 놓여 있다. 회사 거, 내 거.

경계가 없다. 책상도, 시간도, 마음도.

70만원짜리 원룸. 합정동. 31살. 기획자.

이게 지금 내 삶이다.


내일도 똑같겠지

눈 감았다. 내일 알람은 7시 반이다.

일어나면 회사 간다. 퇴근하면 집 온다. 노트북 켠다.

그렇게 산다. 매일.

이게 성장인지 집착인지 모르겠다.

그냥 멈출 수가 없다.


합정동 원룸. 불 꺼진 방. 노트북 슬립 모드 불빛만 깜빡인다.